(손학규의 글 일부 인용)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참고 인내하는 제도이다.
강정구 교수가 한국전쟁을 어떻게 해석했건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다. 별난 사람이 이치에 닿지 않는 발언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 치부하고 지나치면 그 뿐이다. 세상엔 별난 사람도 많은데 교수가 인터넷 신문에 쓴 말도 안되는 글 하나로 왜 이렇게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정구 교수가 정부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비중있는 학자도 아닌데 말이다.
학문적인 비중은 없어도 학생들을 선동할 수 있다고? 그럴 염려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신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런 정도의 충격은 충분히 흡수할 사회적 역량을 갖고 있다.
과거 영국같은 선진 사회에서도 멀쩡한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트로츠키주의 선전물을 길거리에서 배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인들은 그저 무표정하게 선전물을 받아서 조용히 휴지통에 집어넣는다. 그 학생은 조금 뒤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이 강의실에 들어가 수업을 듣는다. 그 학생은 아마 다음해 졸업해서 깔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런던의 은행가에 취직해 다니며 사회에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별의별 사람들이 많고 별의별 이론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다. 이런 것들 가지고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이 떠드는 것은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휘둘릴 사회가 아니다. 이정도의 궤변은 충분히 인내하고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성숙한 사회이다. 어른이 아이들 장난 좀 친다고 큰소리 치고 흥분하면 그 어른이 우스운 꼴이 된다. 형법에서도 정신이상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강정구 교수 문제를 갖고 온 사회가 떠들썩한 것은 강정구 사태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념논쟁, 색깔논쟁에 불붙여 편가르고 패거리지어 지지층을 묶겠다는, 정치적으로 재미 좀 보자는 심뽀다.
강정구 교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결과적으로 강정구 영웅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20-30명의 학생들이 학점 때문에 억지로 앉아 시큰둥 듣고 있는 강의를 2-30 명의 취재진이 몰려가 취재에 열을 올리고 대문짝 만하게 사진을 올리는 한국의 언론, 지구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모를 이름 없는 교수의 되지도 않는 글을 갖고 사설까지 써대며 열을 올리고 있는 유력 언론들의 모습도 한심하기는 매 한가지다.
소모적인 이념논쟁, 또 이것을 이용한 편가르기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그럴 시간에 그런 에너지 갖고 경제 살리고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공장 앞에 길이라도 하나 더 내주고, 자금난 해소를 위한 금융지원책을 강구하고, 외국의 첨단기술 유치하기 위해 한가지 조건이라도 더 충족시켜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시간에 기술개발해서 10년 20년 후 먹고 살 길을 준비하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닦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공허한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의 실학정신으로 우리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민생을 챙기고 실질을 숭상하는 경세치용의 정신으로 우리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 지금 남양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에 서 개최되고 있는 실학축전의 뜻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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