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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불사나이 2006. 9. 8. 09:16
토마스 제퍼슨의 몬티첼로(Monticello)   2006/06/11 10:45 추천 3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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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Jefferson

 

미국의 3대 대톨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처럼 화려한 공직생활을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윌리암 메리대학 출신의 변호사로 버지니아 주지사를 두번이나 역임했다

그리고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 대사로 5년동안 파견근무를 한다

이어 미국으로 돌아와 국무장관,  부통령,  그리고 미국 대통령직을 맡았다

이후 대톨령직을 연임하고 임기를 마치자 고향인 버지니아주로 돌아와서 살면서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 건물로 유명한 버지니아 대학을 설계한다

그리고 그 대학의 초대 총장으로 일했고

그에게는 천재 설계사,  천문학자,  음악가,  식물학자,  저술가,  정치가,  만물박사,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니며 

말년은 자기가 직접 설계하여 건축한 고향집인 몬티첼로에서 정원을 돌보며 살다가

83세의 장수를 누리고 화려한 인생여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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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주의 샤롯트빌 근교에 위치한 토마스 제퍼슨의 저택, 몬티첼로(Monticello)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샤롯트빌에서 3마일 지점에 몬티첼로가 있었다

제퍼슨의 집으로 가기 전 제퍼슨의 기념관이 있었지만 시간관계로 방문을 접고 저택만을 가보기로 했다

53번 동쪽으로 산행을 하니 이태리의 작은 산이름이라는 그의 저택, 몬티첼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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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첼로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

 

사방팔달로 우뚝 선 고지에 그의 저텍이 서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야는 가슴이 탁트이는 절경이었다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럽고 온순했다

나는 풍수지리설은 모르지만 이곳의 지세가 빼어나다는 감이 왔다

이런 곳이라면 제 아무리 멍청한 인물이라도 뭔가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올 정도였다

능히 사나이의 기상과 기백이 길러질 만한 곳이고 능히 천재성이 우러날 수 있었을 법한 곳이었다

장소의 기가 있다는 말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같았다

 

제퍼슨은 14세에 아버지로부터 5000에이크의 농장을 물려 받는다

어린 시절 이곳에 올라와 놀면서 언젠가는 이곳에 집을 짓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울창한 숲이며 작은 강의 지류들이 뻗어있는 널리 퍼진 평야가 무척 비옥해보였다

제퍼슨이 식물을 가꾸고 관심을 둔 것도 이러한 비옥한 땅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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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택,  몬티첼로 정면 모습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고 입장료를 내니 거스름돈을 내어주는데 제퍼슨의 얼굴이 들어간 2불짜리 지폐였다

버스로 저택 입구에 내려 현관으로 들어가니 정장을 한 안내원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 건물은 그가 로마의 옛 성전인 Vesta 성전을 모방해서 지은 것입니다

미국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하지요

그가 25세때 짓기 시작해서 계속 증축, 개축하면서 그가 66세에 완공되었답니다

물론 그가 설계한 것입니다"

 

안내원은 자기 나라 대통령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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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ove 라고 하는 제퍼슨의 침실의 침대가 들어간 곳

 

제퍼슨의 저택 내부는 그의 개성과 취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서재와 침실 사이에 있는 벽면에다 침대를 만들어 넣어서 침대에서 내려서면

어느 쪽 방으로나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고안이었다

그리고 침실 천정에다 구멍을 뚫고 유리창 (Skylight Window)을 박아 햇빛이 방으로 내려 비치도록 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늘 어깨 너머로 불을 비추도록 만든 회전의자,

악보대이면서 독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면 탁자, .

특별한 문고리로 한쪽만 열면 두쪽이 같이 열리는 자동 유리문 등등 손수 만든 물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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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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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안한 Copymachine 

 

특히 나폴레옹에게 1600만달러에 산 루이지아나 계약서를 사인한 탁자가 눈을 끌었다

그 거래로 인해 당시 미국의 땅을 두배로 확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제임스 몬로를 보내 뉴올리안즈를 2백만 달러에 살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전쟁빚에 시달리던 나폴레옹이

아래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한 땅을 전부 1600만달러에 사라고 헸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란 제임스 몬로는 당시 팩스나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대통령의 허락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데 제퍼슨은 그 소식을 듣고 물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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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점선 부분이 나폴레옹이 미국에 판 땅이다. 일에이크에 3센트를 주고 산 셈이라고 한다

 

부엌은 저택의 지하에 있어서 식당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음식 냄새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당시 노예들이 때마다 음식을 운반하느라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이다

노예들은 음식을 나르면서 계속 휘파람을 불어야했는데 음식을 운반하면서

중간에 음식을 집어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도였다는 것이다

노예들이 가져간 음식은  식당 구석문에 달린 회전식 식기 선반에 놓으면

집사가 이것을 직접 대령했다고 한다

노예들은 식당 안에 접근이 어려웠다고 하니 흑인들은 문자 그대로 노예가 틀림없었다 

 

그는 프랑스 대사시절,  노예를 한명 데리고 가서

프랑스 요리공부를 시켜서 데려왔을 정도로 미식가였다고 한다

백악관 시절에도 프랑스 요리사를 고용하였고 또한 포도주 감식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저택에 있는 넓은 포도주 저장실을 보니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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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택에서 나오면 Mulberry Row(뽕나무 길, 위의 사진) 가 있는데 노예들의 작업장이 있던 거리다

낙농실,  훈제소, 목제소, 목공소,  철공소, 작업장 등 17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들이 다 불타버리고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제퍼슨은 원예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 그의 정원에다 160종의 나무와 화초들을 심었고

그리고 170종류의 과일나무와 250종의 채소와  약초를 심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남아있는  타다 남은 한개의 벽을 바라보면서 석연치 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 유명한 미국 독립선언문 전문에 다음과 같이 쓰지 않았던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위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1776년 이후 노예 해방론자들,  여성 해방 운동가들,  인종차별 반대자들이

이 구절을 끊임없이 인용해왔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1795년 당시, 170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20명의 노예를 상속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노몌무역에 관계한 장인으로부터 135명을 더 물려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노예제도를 협오스런 범죄행위라고 하면서도 170명이 되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 노예를 파는 것은 자식을 잃는 것같다고 연민을 보이면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노예를 팔기도 했다

 

물론 노예들의 아버지처럼 그들을 입혀주고, 먹여주고, 그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노력했다고는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제퍼슨 연구가들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유언에 자신의 노예들 중 오직 7명만을 자유인으로 허락했고 나머지는 다 팔려가게 했다

그는 상당한 빚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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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재

 

그는 샐리라는 흑인 하녀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오래전 영화로도 상영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야사에 속하는 이야기다

그 당시 리치몬드 신문에 샐리의 진술이 게재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제퍼슨의 애첩이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비공식 석상에서 이 사실을 부인했다고 하며

제퍼슨 연구학자들도 이사실을 부젇한다고 한다

 

위인들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위인일지라도 나약한 인간의 감성을 패기시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산후병으로 34세에 죽자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으니 그런 일이 가능했음직도 하다

그는 6남매를 낳아 딸 둘만 살아남았지만 11명의 손자, 손녀와 한집에 살았다

그리고 83세의 장수를 누리면서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날 별세했다

미국 독립기념 축제일이 그의 추모식이 되니까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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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택에서 나와 Mulberry Row 를 지나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한참 걷다보면 아늑한 동산이 나온다

그의 가족과 친했던 친구들이 오손도손 모여 누워잠든 묘지다

그의 묘비인 오베리스크에는

"여기 독립선언서와 종교의 자유를 위한 버지니아 법령을 집필했고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였던 토마스 제퍼슨이 묻혀있다" 라고 새겨져있다

왜 미국 3대 대통령이었다는 이력을 생략해버렸을까?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서 말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정치라는 직업에서 은퇴하고

나의 농장,  나의 책,  나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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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원에 서있는 예쁜 건물

 

그는 원래 상류계급의 지주였기도 했지만 귀족 생활을 즐겼다고 볼 수 있다

몬티첼로의 입지 조건과 자연 경관은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에다 목가적인 삶을 완벽하게 향유하다 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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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첼로를 내려오자니 태양이 붉은 잔광을 내뿜고 있었다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서쪽 하늘을 뒤덮은 황혼은 장렬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였다

제퍼슨이 결혼한 마샤는 젊고 아름다운 과부였기에 많은 구애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두명의 구애자가 그녀의 집에 도착했더니 안에서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그 동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제퍼슨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낫겠군" 하고 그들은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날 밤도 오늘같이 이처럼 짙은빛 황혼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슨 감미로운 곡을 연주하고 있었을까?

나는 나무숲 사이로 내비치고 있는 황혼을 뒤돌아보며 감탄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루가 또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