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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묘

천만불사나이 2005. 9. 7. 11:13
실크로드(II), 당현종과 양귀비, 장개석, 그리고 진시황   2005/09/06 12:07 추천 1    스크랩 1

여행은 시간과 공간개념을 잊어버리고 떠나는 것인데 떠난다는 의미는 삶이라는 길에서 가장 주된 길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텔주위의 뒷골목에서 중국의 아침을 본다.

오래된 아파트 앞에서 아침식사거리로 비닐봉지에 빵 몇 개를 사들고 오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골목 어귀에 짐 실을 리어카를 두고 앉아 일거리를 기다리는 두 사내, 골목 돌아 꽃나무를 파는 가게들에서 문을 열어둔 채 온 가족들이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 중국의 고유한 아침 풍경의 하나인 기체조를 집단으로 하는 길 하나 건너 광장의 모습, 이 즈음 큰 길에는 이미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즐비하게 바쁜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화청지풍경@ 들찔레

소시민의 삶들이 도시의 뒤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버스를 타고 본격적으로 여행길에 오른 차창으로 보이는 주도로가에는 서안의 개발붐에 편승한 연립주택과 아파트의 건설이 곳곳에서 한창이다. 마천루 같은 고급 아파트들은 그렇다 차더라도 새로 개발되는 연립주택들은 아직 승용차가 보편화 되지 않은 탓에 동(棟)간 간격이 아주 좁아서 마치 우리나라의 20-30여 년 전 을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여느 동남아의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찻길과 인도는 과장되게 넓어서 길의 폭 사이에 4줄의 가로수가 늘어설 만큼 넉넉한 폭을 가지고 있으며, 가로수 또한 20-30m를 넘을 만큼 우람하다.

서안은 우리에게 오히려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고도(古都)이다. 주나라 이후 10여 개의 왕조가 도읍을 정한 곳으로 현재의 모습은 명대에 새로 구축한 모습이며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신흥 내륙 공업 지역 가운데 하나로, 20여 개의 대학과 연구소들을 갖춘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국의 군수 공장, 우주연구센터 등 핵심적인 산업체가 있으며 후진타오 공산정부에 의해 서북(西北)개발의 일환으로 중국돈 47억원을 투자하여 동쪽 땅의 70%를 다시 개발하고 있으며, 외국자본을 유치하여 서쪽을 경제개발구로 발전시키고 있고, 남쪽은 문화지구로 특화시키는 변화를 꾀하는 역동성을 보이고 있다.

40여분 차를 타고 찾은 첫 유적은 화청지(華淸池), 서안에서 25㎞정도 떨어진 해발 1300여 미터의 여산(驪山)산록에 있는 온천으로 역대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역사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에는 이곳에 여궁(驪宮)을 세웠으며, 진대에는 이곳에 석우(石宇)라 불렀고, 당나라 현종시대에는 이곳을 더욱 크게 넓혀서 이름을 "화청궁"이라 고쳤다. 또한 이곳이 온천위에 지워졌으므로 "화청지"라고도 불린다.

756년 안록산의 난으로 화청지는 불에 타서 훼손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된 것은 청 나라말부터 시작하여 1958년 대규모의 문화재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이며, 현재도 별궁터를 하나씩 복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청지의 연화탕@ 들찔레                              화청지의 해당탕@ 들찔레

화청지에는 43도의 물이 솟는 3개의 수원(水原)이 있으며, 다섯 개의 온천탕이 있는데 그 모양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양귀비 즉 안록산의 아내이자 당현종의 며느리였던 양옥환이 28세에 당시 61세이던 당현종의 귀비로 책봉 받고 만들어진 해당탕(海棠湯=해당화 꽃 모양의 탕) 앞에는 당현종과 앙귀비가 술과 가무를 즐기는 모습이 담벽에 새겨져 있는데, 아내를 바친 안록산이 한 때 아내였던 양귀비에게 어머니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장면이 같이 새겨진 것이 퍽이나 이채롭다.

그 외에도 양귀비와 당현종이 같이 목욕을 했다는 연화탕(蓮華湯), 당태종 이세민의 노천 탕 이었던 성진탕(星辰湯)과, 상식탕(尙食湯), 태자탕(太子湯)이 있었고 양귀비가 몸을 말리던 앙발전도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1000년이 넘은 석류나무 두 그루와 대추나무 둥치 위에 감나무를 접 붙여 키운 ‘화청감’이란 열매가 맺는 특이한 나무들도 보였는데 이곳의 특산물이 원래 석류나무나 감이란 것을 기억한다면 대체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 온천탕들 옆으로 녹원(綠園)이라는 청나라 시대의 정원이 있다. 이곳은 중국의 근대 역사에서 공산당에 의해 선토공후항일(先討共後抗日)의 기치를 내걸었던 1936년 12월 12일, 자신의 의형제이었던 공산주의자 장학량 등에 의해 장개석의 감금이 이루어지고 공산당에 의해 국공합작이 강요되었던 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던 곳이다.

공산주의자들의 토벌이 일본에 대한 극복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장개석이 만주를 정복한 일본에 의해 섬서성로 밀려나 원한을 품고 있던 장학량에게 다시 공산주의자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1936년 12월 7일 서안에 도착하여 화청지의 녹원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 오히려 장학량이 장개석을 구금하고 공산주의자와 민주주의자가 합심하여(국공합작) 일본전에 총력을 다할 것을 강요한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장개석을 잡기위해 쏜 총탄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지금 그 곳에는 중국 공산당의 교육중점 역사지로 지정되어 빨간 글씨의 황금빛 현판이 붙어 있다. 역사는 이렇듯 며느리를 빼앗아 온천욕을 즐기던 곳이 때로는 피 빛 물들이는 권력싸움과 역사의 요동 속, 격랑을 만나는 곳으로도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서안사변의 현장 오간청@ 들찔레                   오간청 내부 장개석의 집무실@ 들찔레

북서쪽 중국에는 가장 큰 타림분지와 관중분지가 있는데 이 곳 서안은 관중분지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여름 기후는 위도에 상관없이 매우 습하고 덥다. 더구나 어느 한 곳 햇볕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여행 첫날부터 힘이 들었다.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진시황릉을 찾았을 때 섭씨 35도를 훨씬 넘었을 거라는 한낮에도 그 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서안에서 37km 떨어진 임동현(臨潼縣)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잔시황릉은 세계적으로 개인을 위한 묘로서는 최대의 크기로 내성 둘레 4Km, 외성 둘레 6Km에 이르고, 능의 높이는 약 79m, 동서 475m, 남북 약 384m로,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으며, 능의 봉분 뒤에는 석류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전한의 역사가 사마천에 의하면 진시황은 그가 황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이 능을 만들기 시작, 36년 동안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그 때는 이미 진시황이 죽은 후였다. 무려 7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고 하는 거대한 무덤 속에는 숲과 산이 있고, 황실 보석창고 그리고 거대한 석각중국지도가 있다고 한다. 능속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서 기궁이라는 자동 발사되는 화살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이곳에 전체 면적이 약 60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광활한 분지 속에서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곳에 하나의 산처럼 우뚝 솟은 이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산만큼의 흙을 어디선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져와서 쌓아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능의 꼭대기를 오르는 동안에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 산 같은 규모의 진시황릉, 온통 석류나무다. ⓒ 들찔레


수양제가 대운하를 건설하였듯,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패왕(覇王)의 흔적을 보는 것인데 지니황릉 역시 왕권의 확립을 위한 시도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니황이 중국 대륙을 통일한 최초의 왕으로 황제(皇帝)라 칭한 중앙집권적 고대 중국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시황릉에서 1.5 Km의 거리에 20세기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되는 병마용(兵馬俑)이 있다. 1974년 3월 29일, 농부였던 양지발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굴된 병마용은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에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을 묻은 것을 말하는데, 현재까지 두 3개의 갱(갱)이 발굴되었으며 그 가운데 1호 갱 에만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살아있는듯 정연하게 늘어서 있으며 이들 병사용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병마용을 만든 시기는 진시황이 천하를 평정하고 난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인 BC 221년~ AD 211년경으로 추정되며 병마용은 진시황을 호위하던 병사들을 그대로 본 떠 만든 것으로 진나라 군대의 위용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게 아닌가하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얼마만한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이 곳 병마용은 1호갱이 약 64,000평방미터에 달하며 동서 길이 210m, 남북의 폭이 60m, 5m 깊이로 파인 직사각형 공간 안에 3열 횡대로 늘어선 6,000개의 병마용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에 반해 2호 갱은 활을 든 궁병 부대, 말과 전차가 있는 전차병 부대, 보병과 기마병이 혼합된 부대, 기마병만 있는 부대 등 4개의 부대가 서로 구분 지어져 동쪽으로 바라보고 서있으며 병용 1,300개, 전차 80여대와 함께 다량의 금속병기가 출토되어 관심을 모았으나 발굴이 중단 된 상태이다.

발굴이 중단된 이유는 원래 피부나 옷, 또는 의장이 각각 채색되어 살아있는 모습처럼 보이던 것들이 2200년 넘게 땅속에 있다. 발굴시 공기에 노출 되면서 곧 채색이 사라지는 것들이 해결되지 않아 원래의 모습을 유지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 시간이 50년이 걸리던, 100년이 걸리든지 그냥 발굴하지 않겠다는 중국정부의 정책은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호 갱은 3개의 갱 중 규모가 가장 작고 병마용의 수도 가장 적지만 1호와 2호의 병마용이 전투대열로 정렬해 있던 것에 비해 3호의 병마용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통로 양쪽으로 정렬해 있어 아마도 전체를 통솔하는 지휘본부로 추정한다고 한다.

◇ 병마용 1호갱 내부 모습 ⓒ 들찔레

◇ 진시황의 전차 ⓒ 들찔레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어둡고 멀리 있는 병마용들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실제의 대표적인 병마용 몇 개를 따로 전시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특히 진시황릉 인근에서 발견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청동전차가 그 정교함을 뽐내며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밖에서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관중평원의 분지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뜨겁게 달구어진 황토흙을 노략질하듯 때리는 모습을 본다. 강우량이 년 600mm에도 못 미치는 마른 땅에 30여분 동안 뿌려대는 비를 이 곳 사람들은 복비(福雨)라고 부른단다.

기름에 튀겨지고, 볶이고, 구워진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면서 병마용에 새겨진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2200여 년 전의 사람들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땅속에 묻혀 묵언(黙言)수행을 하던 그들이 20세기 말에 다시 햇볕을 보는 순간 너무나 오랫동안 갇혀 있던 억울함 때문에 자신의 피부색을 잃고는 우리들앞에서 테라코타로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

또한 그들을 만들었던 사람들, 흙을 개고 붙이던 그들은 지하궁궐의 비밀을 발설치 못하게 하기 위한 진시황의 명령으로 자신들의 영혼 하나를 하나씩을 용(俑)으로 만든 후 죽어간 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듯한 병마용의 얼굴@ 들찔레

세월을 뛰어 넘는 나의 물음들에 대해 그 어떤 병마용도 답을 하지 않았고, 그냥 그대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그들이 나는 야속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지배자의 욕심에 의해 병마용을 만든 평범한 그 시대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영혼이 되어 억하심정을 2000년 넘게 가지고 가슴을 부비며 어두운 땅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토용(土俑)들이 한 낯 호기심으로 관광을 온 나에게 뭐라 말을 할 것이 있겠는가?

난주(蘭州)로 가는 밤 비행기 속에서도 나는 내내 병마용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전차들의 말발굽소리에 뒤척이면서 한 밤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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