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한 盧, 명분과 실리를 모두 확보한
朴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간 여야 영수회담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약 2시간3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연정 및 선거구제 개편의 불가피성을 설명했으며, 박대표는 경제불황 및 민생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노대통령의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당부했다.
오늘 회담에 앞서 정가에서는 서민경제 안정을 위한 작은 공동합의문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양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합의문 도출 자체에 실패했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노대통령의 "깜짝 발언"이나 개헌과 관련된 "대담한 제의"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오늘 회담은 상호간의 입장차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가운데 노대통령과 박대표 모두가 각각의 명분을 확보한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노대통령 입장에서는 야당 대표를 설득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고, 박대표 입장에서는 민생을 중심에 두는 한나라당의
색깔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가운데에 역시 노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최선을 다해 응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펴보면 실질적으로는 박근혜 대표의 판정승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한나라당내 중론을 충실히 따른 형태를 보임으로써
당내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하는 한편, 시정이나 도정을 통해 직접 민생의 현장으로 파고드는 이명박 시장, 손학규 지사와 달리 직접적으로 현장을
접할 수 없었던 한계를 일거에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박대표가 노대통령에게 이야기한 내용들이 적어도 생활고를 겪고있는
서민들에게는 상당한 격려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노대통령은 장고에 접어드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일단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물건너간 상황에서 더 이상 이를
거론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당 혹은 민노당과의 소연정으로 돌아선다고 하더라도 선거구제 개편이나 개헌과 같은 초강도
해법을 관철시키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합당과 같은 초강력 해법이 전제되지 않는한 정책연합 형태로 섣불리 선거법
개정안 통과를 강행하는 것도 이탈표에 대한 우려로 인해 어렵다.
盧 "열린우리당 창당은 호남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
노대통령은 오늘 박대표와의 회담에서 스스로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즉,
"열린우리당 창당은 호남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탈당 정치인은 비장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선도 어려웠을텐데... 나는 감동 느꼈다.
부산의 4~5석만 있어도 이렇게 정치 삭막하지 않을 것이다. 30%만 의석 차지해도..."라는 발언을 통해 대단히 민감한 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소회를 토로했다.
호남당이라는 이미지 극복을 위해 광주시민들이 영남출신인 노무현을 대통령후보로 만들었고, 거기에
90%가 넘는 지지로 화답하여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는데, 대통령 취임후 여전히 민주당이 호남당이라는 생각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면 이는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스스로가 "위대한 광주시민의 선택"으로 극찬했던 것을 뒤집는 발언이기도
하며, 호남 지지자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부산의 4~5석만 있어도..."라는 표현도 지역구도에 대한 이해로는 매우 원초적인 수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박대표가 예로 든 5공화국 당시 중선거구제로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신민당 모두 전국적으로 고른 의석분포를
보였으나, 그것으로서 지역구도가 극복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즉,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4~5석을 얻는 순간에 지역구도가
해소되었다고 보는 것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중권 후보가 16대 총선 당시 경북에서 9표
차이로 낙선할 정도로 국민의 정부 및 민주당은 영남권 교두보 확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렇다면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이같은 고질적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가? 영남에 가서는 영남 지역정서를 자극하고, 호남에 가서는 호남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대통령은 뭐했나? 열린우리당은 뭐했나?"고 맞받아친 박대표의 일침이 더욱 뼈아플 수 밖에
없다.
盧-朴회담, 박근혜 대세론에 불을 지핀다
한때 20%를 넘는 지지율을 나타냈던 박근혜 대표는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의 맹렬한 추격으로 인해
12~15%대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었다. 같은 시기에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30~35%대에 안착해있는 상황이었고, 이명박
시장은 9%대에서 16%로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대표에게 단독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은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과 진배 없는 것이었고, 박대표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주춤했던 "박근혜 대세론"에 다시 불을 지피는 효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진일퇴 공방에서 전혀 흔들림없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사실상 대화의 주도권을
계속 잡아나감으로써 당내외적으로 흔들리던 리더쉽을 다시 회복하는 "덤"까지 얻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늘 회담은 마치 "박근혜 교수"가 "노무현
학생"에 대해 민생학 강의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오늘 회담에 대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논평도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이 노대통령과 박근혜
대표를 싸잡아 비난한 반면,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와 유종필 대변인은 사실상 박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과 진배없는 내용을 담았다.
"이제 연정은 끝났다", "연정 이야기는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은 민생경제에 전념해야 한다",
"대통령책임제는 대통령이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제도인 만큼 국정실패의 책임을 야당에게 떠넘기려해서는 안된다" 등의 표현은 사실상
박대표의 회담 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한 모습이다.
민주당의 이같은 입장은 노대통령 및 열린우리당이 "대연정"을 접고 민주-민노와의 "소연정"으로 돌아서는
것에 대해 민주당이 냉소적인 입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민주당이 이와같은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향후 정국 운영의 중심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주도하는 형태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합당 문제에 대해 민주당 보다 더 큰 정체성 위기를 우려하는 민주노동당 역시 열린우리당과의 정책
협력에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어 청와대 및 열린우리당 내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회담을 뒤로 한채 노대통령은 중남미 및 유엔 순방길에 오르게 된다. 귀국에 즈음하여
노대통령이 풀어놓을 보따리가 과연 무엇이 될지 벌써부터 정가의 관심은 뜨거워져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