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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

천만불사나이 2005. 11. 17.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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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재벌 2세들의 ‘고민’
입력 : 2005.11.15 18:48 28' / 수정 : 2005.11.16 02:29 04'


▲ 최홍섭기자
얼마 전 어느 중견그룹 회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솔직한 고백에 깜짝 놀랐다. 경영 수업 중인 자기 아들을 혹평하는 것이었다. 잠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어릴 때 열심히 공부시켜 일류 대학 보냈다. 대학 때는 해외연수도 많이 시켰다. 졸업 후엔 미국 명문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도록 했다. 귀국 후엔 인적 네트워크를 쌓으라고 각종 상류층 서클에 참가하도록 주선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을 현장에 투입하니 리더십 문제가 드러나요. 어렵고 힘든 건 기피하고, 재테크에만 관심이 많아요. 주식만 슬금슬금 자기 명의로 바꾸고….” 경영 목표를 달성했다길래 알아 보니 아예 목표치를 내려잡았다는 것이다. 그 회장은 “내심 아들이 정주영 같은 기업가 정신을 지닌 경영자가 되길 바랐다”며 “다른 재벌 후계자들도 비슷해 보여서 걱정”이라고 탄식했다.

요즘 ‘재벌 2세’(보통 3~4세도 포함시켜 일컫는 말)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창업주 세대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재벌 2세들이 과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겠다는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특별히 우려하고 있다.

기자는 최근 일부 재벌 2세들이 외국 패션 브랜드와 수입차 판매, 외식업체 운영 등 창업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업종에 진출하는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재벌 2세들이 솔직하게 자기 입장을 털어놓은 기록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2~3세 경영인의 고민은 잘하면 아버지 잘 만난 것이고, 못하면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2세들 중엔 이걸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지급보증은 다 서고, 스톡옵션은 못 받고….” “내 재산을 증식시켜 줄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만 있으면 골치 아프게 경영에 직접 관여할 필요가 없다.”

재벌 2세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버지 세대에선 그저 정권에 잘 보이면 됐지만 이제는 곳곳에서 감시의 눈길이 번득인다. 새로운 사업 발굴이 쉽지 않은데 아버지와의 능력 비교는 자주 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대 기업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 말치고는 너무 책임감과 끈기가 부족해 보인다.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는 우리나라 재벌을 포함한 ‘가족기업’(family business)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고, 매년 전 세계의 우수 가족기업을 골라 시상한다. 시상 기준은 지배구조가 좋고 투명성이 높으냐가 아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계승자(2세)가 의욕과 능력을 바탕으로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느냐다. 성공한 가족기업은 2세들이 기존 기업에다 ‘새로운 가치’를 더했다는 게 IMD의 연구 결과다.

만일 재벌 2세들이 손쉬운 사업과 재테크에 안주하면서 앞 세대들이 보였던 기업가 정신을 흉내조차 내지 않는다면, 외국 명문대에서 MBA를 받고 돌아와 구상하는 비즈니스가 수입품 판매 정도에 그친다면, 계속 시민단체와 비판세력의 ‘손쉬운’ 타깃이 될 것이다.

최근 또 다른 중견그룹 회장을 만났다. 아들에게 언제 경영권을 물려주겠느냐고 물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함부로 재산을 물려줄 수 있나요. 능력도 안 되는데 맡길 수 없지요.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불합격이면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을 줄 겁니다.” 그저 기자 앞에서 한 ‘립 서비스(Lip service)’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