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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불사나이 2006. 2. 9. 12:54
진성호의 디지털 세상 읽기] 인순이의 눈물, '수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의 살인 미소
조선닷컴 편집장의 편지

▲ 진성호 ·인터넷뉴스부장
‘하인스 워드’.

사이버 공간은 6일 오후부터 7일 내내 이 단어로 요동쳤다. 네이버 등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는 단연 한국계 NFL 선수인 ‘하인스 워드’였다. 각 사이트에는 워드를 응원하는 팬클럽들이 생겼고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은 워드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나 홈피에 퍼서 나르느라 바빴다.

다음날인 8일은 워드 어머니의 날이었다. 김영희씨. 너무나도 치열하게 아들을 키운 이 어머니의 인간 승리는 워드 이야기 이상으로 네티즌들을 감동시켰다.

무엇보다 워드의 ‘살인 미소’는 미국 팬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아무리 경기가 힘들어도 그는 결코 팬들이나 동료들 앞에서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워드는 미키마우스와 함께 활짝 웃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디즈니 모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런 문제제기도 나왔다.

“과연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이런 결과를 낳을 수가 있었을까?”

가수 인순이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혼혈이란 이유로 마이크를 잡기 위해 남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했다. “곱슬머리 재수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대에 서지 못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가수 조영남씨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만약 가창력 위주로 출연자를 결정하는 KBS의 ‘열린 음악회’란 프로그램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스타 인순이는 없었을 것이다.” 인순이가 과거에 흘렸을 눈물의 양을 짐작해 보는 일은 그래서 그리 어렵지 않다.

가수 중에는 물론 ‘아파트’를 부른 윤수일 등 혼혈 가수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같은 혼혈이라도 인순이나 박일준 처럼 흑인과의 혼혈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더 심한 편견과 싸워야 했다.

오늘 사이버 공간에는 워드를 향한 예찬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국내 혼혈인들의 마음이 반드시 편치 만은 않을 것 같다.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1세대'를 시작으로 최근 아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Kosian)'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국내에선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동아일보가 국내 혼혈인의 문제에 대한 기획 취재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기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한국에는 혼혈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혼혈인 문제를 ‘나 몰라라’ 식으로 방치하고 있는 정부가 통계를 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혼혈인 관련 단체는 국내 혼혈인 수를 1만5000여 명으로 추산했으나 다른 한 혼혈인 단체는 최소한 7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짐작할 정도로 편차가 크다.”

이게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많은 혼혈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지 못해 학교를 중퇴하거나, 사회 적응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런데도 뚜렷하게 우리의 이웃인 이들을 감싸주려는 노력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게 사회복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지난달 22일 레인 에번스(55·민주당·일리노이주) 미국 하원의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미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자는 ‘2005 미국계 아시아인 시민권 부여법안(Citizenship for Amerasian Act 2005)’ 법안을 만든 정치인이다.

에번스 의원은 7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데도 그가 상정한 이 법안에 대해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행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서 가진 기자회견서 “미국계 한국 혼혈인, 그들은 미국의 자녀들이자 한국의 자녀들입니다. 한국인들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 정치인이 있는데도, 국내에는 정작 혼혈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 사회단체가 드문 것일까? 물론 ‘펄벅재단’처럼 꾸준히 이 문제를 천착하는 단체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부족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 자세는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담긴 순혈주의 풍토가 아닐까 싶다. 일종의 폐쇄적 민족주의다. 혼혈에 대한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래서 하인스 워드 신드롬이 국내에서도 혼혈인을 보는 시각을 교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워드의 교훈을 읽고 한국의 혼혈아들이 힘을 얻고, 사회의 혼혈인에 대한 생각이 변한다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대한민국 하인스 워드’의 출현을 기다려 보자.

진성호 인터넷뉴스부장 shjin@chosun.com
입력 : 2006.02.08 22:28 29' / 수정 : 2006.02.09 04:39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