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
문화적 삼십대는 그렇게 시작하네.
사람이 그립지만 막상 만나면 아무도 그립지 않네.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게 되는 것도 그 무렵이네.
밤마다 열쇠로 따고 들어오는 자취방은 보일러를 켜도 스산하기만 하지.
시리즈 비디오를 빌려보게 되고 반쯤은 다 못보고 반납하게 되고
가끔 극장가를 배회하기도 하지.
그럴 때 한 여자를 만나게 되지. 이제 바보짓은 하지 않아도 좋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허투로 관통시키지 않기에
이제 다소는 무덤덤하고 심드렁하게 사랑을 고백해보게 되지.
그런 방식이야말로 서로의 상처를 줄이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인간이 만든 최악의 제도라던 결혼이 차악으로 보이게 되는 것도 그 쯤이고
서로를 간헐적으로 외롭게 만드는 더벅머리 친구보다
지속적으로 외롭게 만드는 반려가 더 나아보이는 때도 그 무렵일 것이네.
스무살 무렵에는 여자의 매력이 마음을 데우지만
이제는 여자의 아픔이 용기를 북돋게 되지.
스무살의 전장에 묻고 왔다고 믿었던 부장품들이 옷장 속에서 기어나오지.
열정, 질투, 희망 따위.
말없고 단정하던 그녀가 자신에게만 응석을 부리기 시작하지.
월급을 탄 그녀가 중저가 브랜드의 티셔츠를 사다주면
그게 쑥스러워 일부러 옷자락을 바지 밖으로 빼어내서 입고 다니지.
하늘의 빛깔은 여전히 어둡고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지.
소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하네. 코미디 영화가 좋아지네.
그래도 가끔 스무살 무렵을 생각하네.
밤새 술 마시던 골목을 지날 때면, 그때 읽던 책을 책장에서 치울 때면,
가끔 담배를 피워대네.
그땐 그래도 자유로웠다, 고 생각하지. 오, 그때의 그 자유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얼마나 성가셨는지,
얼마나 사람을 환장케했던지를 생각하면서
이제 더 이상 그 자유를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네.
어느날 자리에서 일어나 면도를 하게 되지.
면도날을 새것으로 갈아끼우고 그녀가 사다준 면도거품을 정성껏 바르고
뜨거운 물을 세면대에 받아서 말이네.
그리고는 머리를 깎고 몸에 잘 맞지 않는 이상한 옷을 입고 황급히 달려가네.
꼭 황급히 달려가야만 하네. 그게 어울리네.
그렇게 달려가면 거기 신부가 역시 이상한 옷을 입고 피곤한 표정으로 기다리네.
그때 잠시 멈추어서서 뒤를 돌아다본다네.
무진기행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를 것이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그러나 머리를 세차게 내젓고 걸어가 신부의 손을 잡네.
서른살 무렵에 다시 은둔을 꿈꾸지.
그 운둔은 스무살 무렵의 은둔과 다른 새로운 은둔일 것이네.
새로운 은둔의 동반자와 함께 걸어나가네.
드보르작의 한여름밤의 꿈이 울려퍼지네.
마흔 무렵이 되면 다시 이런 글을 쓸 것이네.
서른 무렵에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로 시작하는 글 말일세.
당신이 부럽네. 축하하네. 이제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게.
다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싸우고 토악질하고 부둥켜 안고 울기를 바라네.
그래야 마흔이 되어도 이런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네. 안 그런가?
<< 퍼온 글 입니다 >>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비싼 술 (0) | 2020.09.18 |
|---|---|
| 변화 (0) | 2020.08.27 |
| 미국 (0) | 2020.07.03 |
| 스크랩] 해리포터6권 줄거리 (0) | 2020.06.25 |
| 탱고란 " 퍼온 글" (0) | 20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