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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 주에 있는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1809-1865) 묘지(Oakridge Cemetery)를
방문했다. 링컨 묘지와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그의 업적과 박정희의 치적(峙積)을 생각했다. 이를 생각하며 정치난제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여기 링컨 묘지/유적지 방문에 대한 글과 사진으로 내용을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링컨이 쌓은 그런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면 “국립묘지”로 불리는 곳에 안장 되었을 터인데 링컨 대통령 묘는
그렇지 않는 게 색다르다. 링컨 묘지는 스프링필드 시에서 만들었다. 그러다 나중 링컨의 기념비가 세워진 12 에이커 땅은 일리노이 주정부가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국립묘지”라 불리지 않는 게 특징(?)이다.

링컨, 여기에 잠들다
링컨이 묻힌 묘지는 1855년에 스프링필드 市가 28에이커를 사들임으로써 시작했다 그동안 사이즈가 계속 늘어 지금은
300에이커가 된다. 1에이커가 1224평 되니 전체 크기는 여의도의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기념 묘지엔 한국전쟁을 기념한 기념비도 있다. 물론 2차 세계대전과 월남전 기념비도 있다. 때문에 난 한국전
기념비를 뜻있게 구경했다.
한국전 기념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역시 미국답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이 세계 11-12위 경제국으로
일궈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도움이 있어서고, 또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게 애초의 초석을 다진 사람은 “에이브라함 링컨”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번 방문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링컨은 1861-1865에 남북전쟁(Civil War)이라는 희생이 엄청 큰 내전을 치뤘지만 미국을 세계적
중심 국가로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다. 노예해방 전쟁으로 잃은 군 사망자만 680,000명. 그 유명한 케티스버그 3일간의 전투에서 잃은 생명만
51,112명이 된다. 밝혀지지 않은 민간인 사망자 수를 합치면 사망자 수는 훨씬 많다. 최소 100만 명이 넘 것으로
추산된다.
게티스버그 한 전투의 3일간 전투에서 죽은 링컨 수하 북군 유니온 군대(Union Army)만 2만3천여 명,
노예해방을 반대한 남부군(Confederate Army)은 2만8천여 명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단 3일 만에 죽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그야말로 들판이 온통 시체가 즐비했던 것이다. 비극 중 비극이다.
이 전쟁의 승리가 남부군에게 돌아갔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노예해방은 50년 100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의 미합중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미국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합중국 군사력 도움없이 연합군이 승리했어도 훨씬 많은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한국전도 그랬을 것이다. 미합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있었으니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구원 군을 보낼 수 있었지 그렇지
않고 미국이 한국과 같이 남북으로 갈라진 국가였다면 한국에 구원군 보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Korean War
기념비
만일 그랬다면 지금 한국은 공산정권 하에서 신음하며 살고 있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링컨
대통령의 업적은 미국에 국한된 것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 그리고 한번도의 자유 수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세계적 평화 구도를 놓고 본다면 링컨의 업적은 미국인 생각의 그 이상이 된다. 특히 남북이 분단된 우리 한국의
역사를 놓고 본다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한 만이라도 미국의 보호 우산 아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 세계에 우뚝 선 경제소강국을
만들 수 있어서다.
미국이 한국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희생시킨 병사만 5만4천여 명. 어떤 나라가 남의 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런 피를 흘릴 수 있나.

한국전쟁에서 공식집계된 미군
전사자 54,246 명. 행방불명 8,177명.
미국이 중국이나 구소련 같이 타국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억압과 압제 통치를 했다면 미국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미국은 자유를 주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며 지금도 자주 국가를 세우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도움을
준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성공적이며 경제 모범 국이 되어 선진국에서 경탄을 금치
못한다.
며칠 전 호주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은 “불가사의” 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배가 36시간에 한척씩 건조된다고
말하며 한국의 배 건조 능력은 일본을 능가한다고 극찬했다. 이런 경제신화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놀라워하면서
말이다.
자동차 생산은 연간 400만대 고지를 향해 돌파하고 있고, 2010년대 들어가면 500만대 생산이 가능해진다.
전자에서는 D-RAM 메모리를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일본을 완전히 따돌렸다. 이젠 플래시 메모리로 세계를 점령하려한다. 그동안 인텔 진영의
노어형 플래스 메모리를 뒤쫓았는데 이젠 삼성의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한다. 바로 어제 16기가 메모리를 생산하면서 그 기선을
잡았다. 이 조그마한 메모리 안에 8,00여곡을 담을 수 있다.
이런 일 한국 국민의 근면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이 전후 폐허화되었을 때 경제/군사원조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런 신화를 일굴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미국의 적지 않은 경제 원조를 해줘 가능했다. 이런 의미로 한국의 발전상을 본다면 미국은 은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런 과정을 일구는 과정에서 언짢은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한국이 일어설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것은 링컨의 인권평등 믿음과 정책, 그리고 전쟁을 치른 대가가 있어서
가능해졌다. 그는 비록 목숨을 잃는다 해도 옳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싸워 노예를 해방시켰고 국가를 통일시켰다. 이런 링컨의 신념 한반도에서도
꽃피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정희는 개발독재의 철권통치를 휘둘렀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대단하다. 비난과 욕을 각오하고 뜻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에게 잘 보여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점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욕먹지만 그 차체가 훗날 우리나라의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링컨 대통령도 살아생전 박정희가 듣던 비난을 다 들었다는 것을 알면 두 사람 닮은
점은 그 누구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링컨에 대한 비난은 그의 사후 50년 정도 훗날 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미국이 “잠자는 사자”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1910년경부터 링컨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부활되기 시작했다. 세계 지배력은 미국이 노예배방을 시켜주는 동시에 두 동강이 날 뻔했던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도 묶어놓음으로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력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그때 링컨이 남부와의 전쟁이 무서워 북부만 산업경제를 일으켜 잘 살고자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링컨은 욕먹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흉탄에 맞아 암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산업경제를 통한 국가경쟁력도 키우며 동시에
남부를 껴안았다. 그것도 장애되는 노예해방을 위해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루면서 말이다.
박정희도 역시 같은 유(類)의 사람이다. 비록 노예해방의 구호는 없었지만 36년간의 일제압박, 6.25동족상잔을 통한
폐허화의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경제건설을 통한 국가경쟁력을 키워야한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수많은 비난 속에
경제계획을 차근차근 밀고 나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상위의 경제강소국을 일궜다.

바로 이런 면을 보고 박정희를 “한국의 링컨”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부 세력이 비난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래도 박정희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인식한다. 이 사실 자체가 박정희는 남다른 지도자였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그를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보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1) 살아생전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은 파렴치한 폭정을 하지 않은 것.
(2) 죽어서 남긴 것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기적.
(3) 청렴.
지도자가 이런 결과를 일구었다면 그 이상 뭘 바랄 게 있나. 입만 벙끗하며 탁상공론을 일삼는 철학가나 성인군자상의
성직자보다 훨씬 나았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말만 앞세우며 링컨도 독학으로 법학 공부하고, 변호사 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또 자신도 그런 과정으로 통치자가
되어 국정을 수행하고 있으니 링컨과 같은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허황된 꿈 꾸는 사람은 먼저 박정희의 통치법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도 않는 링컨의 이상(理想)만 생각하고 말하며 실제 국가에 그리 큰 도움이 못되는 실정(失政)만 되풀이하면 제2의 IMF를 맞을 수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링컨 변호사 사무실
빌딩, 사무실 3층. 일년 리스비용 100달러. 당시 최고가.
김영삼이 “민주화, 민주화”만 외치다 나라 절단 냈고, 김대중은 동포애를 발휘한다고 이북동포를 폭정으로 다스리는
김정일에게 돈만 갖다 바쳐 그의 정권을 연장시켰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기업은 살리기 힘드니 엿 값으로 팔아치워 우리의 경제위상을 실축시켰다.
노무현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사실 노무현도 현실과 이상 차이로 자신의 실력 부족을 알고 “연정”이라는 망측한
통치구상으로 자신의 실정을 야당과 함께 나눠먹겠다(?)는 발상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즉 나만 빠져 죽을 수 없으니 당신들도 나와 함께
빠져죽자는 속셈이다.
물론 “연정” 제안이 다 그런 흑심을 갖고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다. 문제는 현실이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을 현 정권은 모른다. 오해받을 만 하다. 그럼 그 오해는 풀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러니 일은 더
꼬인다.
만일 현 정권이 연정 제안 전에 현안의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해결한 상태에서, 즉 여당 하는 일이 정말 잘 되어 야당이
보기에 부러울 정도가 되었을 때 그런 연정을 제한했다면 그 연정은 먹혀들어간다. 하지만 잘 되면 남에게 파이를 내줄 수 없어 여당은 그런 제안할
리 만무 아닌가. 그러니 그럴 듯하게 보이는 “연정”은 속보인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여당은 그런 얄팍한 속임수보다 박정희의 통치와 그의 경제개발정책을 현실에 맞게 써먹을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게 더 낫다.
무조건 김정일에게 돈과 정만 주고 실연당하여 울고불고 하지 말고 현실성 있는 방법으로 우리(남한)도 살고 이북 동포도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의 확고한 신념 통치 스타일을 통한 경제발전 정책을 현실에 맞게 추진하면 그게 최고의 방법이 된다. 그런
월등한 경제력 치적은 북한을 흡수통일하고 이북 동포들도 살린다. 그동안 폭정을 휘둘렀던 폭도들은 살 길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 수는 극소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택해도 누가 욕하지 않는다. 역사도 다수의 이북동포를 살린 자의 편에 선다.
지금의 “퍼주기 방식”은 김정일과 그 측근 몇몇만 배불린다. 이런 폭도들의 위한 인기전술은 결국 자기 무덤만 파게
된다. 김대중 정권도 그랬고 노무현 정권도 모르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링컨은 백인만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방법 택하지
않았다.)
만일 노무현 정권이 박정희 개발정책을 거울삼아 현실에 맞게 적절한 경제정책을 펴며 통일정책을 억압받은 이북동포를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방향타를 수정한다면 생각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을 능가하는 아시아의 용으로 웅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비록 중국의 경제력에 못 미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세계가 무시 못 할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날엔 박정희의 치적은 미국 정치의
등불이었던 링컨의 업적에 버금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박정희가 이룬 경제적 업적 위에 민주와 평화의 날일 꽃필 수 있어서다. 그런
날이 오면 박정희는 아시아 새 등불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역사적인 인물로 재조명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기대를 걸어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링컨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을
보낸 "스프링필드" 기념 사진

링컨 대툥령이 안장된 모뉴먼트(좌), 링컨
시신의 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우)

링컨
박물관(좌), 구 시청, 링컨 3층 사무실에서 내려다 보인다(우)

박물관에
있는 모형 링컨 가족(좌), 링컨이 실제 17년간 살던 집(우)

링컨
집의 거실과 부엌

링컨 집
뒷간, 4개의 용변기가 나란히

스프링필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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