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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의
도토리 장사가 동네 초등학교 앞 떡볶기 집의 매출을 급격히 감소시켰다면 언뜻 무슨 말인지 의아해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언제부턴가 ‘싸이질(싸이월드의
미니 홈피 꾸미기와 남의 홈피 구경하기)’이 자아표출의 국민적 놀이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엉뚱하게도
초등학교 학생들의 군것질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에게서 타낸 용돈을 싸이월드의
디지털 아이템, 즉 ‘도토리’를 사는 데 다 써버리면서 떡볶이 사먹을 돈이 없어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학교 앞 떡볶이 집은 국내 굴지의
SK그룹 계열사로서 싸이월드를 소유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경쟁자였습니다.
만일
인텔, 월트디즈니, 시스코시스템스가 손을 잡고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면 어떨까요. “이제 영화(비디오) 대여 시장은 우리가 차지할 테니, 당신들(비디오대여점)은
업종을 바꾸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언뜻 보면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벼룩의 간을 내먹겠다’고 총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는데, 적지 않은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정말입니다. 진짜로 인텔,
월트디즈니, 시스코시스템스는 2006년 2월14일 수많은 비디오 대여점을 향해 대포를 쏘았습니다. 영화
콘텐츠를 영화관이 아니라 직접 소비자에게 배급하는 ‘전자영화배급사업(the business of
electronic movie distribution)’에 공동으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들 3개사는 주요 벤처 캐피털인 매이필드 펀드,
노웨스트 벤처 파트너스 그리고 밴티지포인트 벤처 파트너스 등과 함께 ‘무비빔(Movie)’이라는 회사에 485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무비빔은 무선 네트워크로 영화를 각 가정까지 배달함으로써 편하게 집안의 홈씨어터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한 신종 비디오 대여 서비스 업체입니다.
미국의 연간
비디오 렌털 시장 규모는 100억 달러입니다.
줄잡아 3000만 가구가 한 달에 적어도
4~5편의 영화 비디오를 빌려보며, 빌려보는 비디오의 80%가 신작 영화라고 합니다. 2006년 3월 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 74일만에 전국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하면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영화관에서 영화보기’에 집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한국과는
달리, 아마도 적어도 수 천만 명의 미국인들은 ‘집에서 영화보기’에 심취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무비빔’의 실체입니다. 제가 무비빔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3년 9월29일입니다. 그날 외신이
전한 소식은 세계적인 영화사인 월트 디즈니가 영화관이나 비디오 대여점을 거치지 않고 영화 콘텐츠를 가정의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획기적인
시도이자, 주문형 영화 비디오(Movie on
deman)의 새로운 영화배급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삼성전자가 제작한 무비빔 수신기를 월 6.99달러씩
받고 가입자들에게 대여한다고 해서 한국의 신문사에서 일하는 저 같은 기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무비빔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미국의 공중파 방송사인
ABC와 PBS의 데이터방송 네트워크를 통해 압축된 영화파일을 전송하면, 무비빔 가입자 집안에 설치된 무비빔 셋톱박스가 무선으로 이 파일을 받아 일단 하드디스크에 저장합니다. 이렇게 하면 가입자는 24시간 내에 자신이 구매한 영화를 얼마든지
반복해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무단으로 영화를 받아보거나,
CD 등에 옮겨 담아 타인에게 유포하지 못하도록 인증 및 복제방지처리를 한 것은 물론입니다.
인증과 과금을 위해 무비빔 셋톱박스는 전화선에 물려 놓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월트
디즈니가 무비빔으로 제공한 콘텐츠는 당시만 해도 신작이자 대작이었던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시카고’ ‘올드 스쿨’ 같은 영화였습니다. 따끈따끈한 영화를 수급하기 위해 월트 디즈니는 헐리우드의
메이저급 영화사들과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드림웍스, MGM,
소니 픽처스, 유니버셜 스튜디오,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폭스 등이 월트 디즈니가 무비빔 서비스를 위해 제휴를 맺은 영화사들입니다. 한발 나아가 디즈니는 무비빔 이용자를 전국적으로 늘리기 위해 세계적인 우편배달업체인 페덱스(FedEX)와 손을 잡고, 신청 후
2일 안에 무비빔 셋톱박스를 신청자 가정에 설치하는 유통전략을 펼쳤습니다.
저는 콘텐츠
수급, 네트워크 전송, 방송 네트워크를 타고 전달된 무비빔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설치되는 셋톱박스, 그리고 강력한 유통망을 확보한 무비빔의 영화 콘텐츠 유통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섣부른 예상이었는지,
그 이후로 무비빔 소식은 외신에서 잠잠했습니다. 출발은 장대했으나, 영화 소비의 오래된 관행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소비패턴을 의미하는 ‘온디멘드 영화 직배’가 과연 성공할 지에
대해 미국의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은 반신반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2월 무비빔의 화려한 도약을 접한 것입니다.
(사실 무비빔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3월14일
무비빔 같은 푸시형 VOD 솔루션을 한국에 공급하려하는 한 외국기업의 아시아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무비빔의 최근 소식을 정확히 알게 됐습니다.)
무비빔
서비스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249.99달러짜리 무비빔 플레이어를 구입해 가정에 설치한 뒤 제품박스에
들어있는 엽서와 제품수령증을 우편으로 보내면 50달러를 수표로 환불 받습니다. 199.99달러에 제품을 사는 것입니다. 이어 처음으로 사용할 때
개통비조로 29,99달러를 내면, 이때부터 한
달에 100편씩의 영화가 무선으로 가정의 무비빔 박스의 하드디스크에 자동으로 담깁니다. 매달 10편씩의 신작 영화가 새롭게 바뀌는데, 소비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DVD를 틀 듯 보면
되며, 무비빔 플레이어에 연결된 전화선으로 과금이 이뤄집니다.
영화를 한 편 보는데 드는 비용은 신작의 경우 표준화면(SD)급은 3.99달러, 고화질(HD)급은 4.99달러입니다.
신작이 아닐 경우는 SD급이
1.99달러, HD급이
2.99달러입니다.
2006년 3월의 발표는
2003년 9월과는 양상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제조업체인 인텔과 시스코시스템스가 투자와 함께 이 사업에 직접 가담함으로써 무비빔의 성공가능성을 한층 높였습니다. 인텔과 시스코의 전략은 분명합니다. 기업 대상(B2B)의 IT제조업에서 나아가 ‘가정’으로 직접 파고
들겠다는 B2C 전략입니다. 두 회사는 ‘홈네트워킹’에
미래사업의 비전을 걸었습니다. 시스코는 1998년 가정용
모뎀으로 개인 고객 시장에 진출했다가 채 2년도 안되 철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홈네트워크용 단말기 업체인 링크시스(Linksys)를 인수했고, 이어
2005년 11월 미국 2위의 케이블TV용 셋톱박스 전문업체인 사이언티픽 애틀랜타를 무려
69억달러(당시 한국 돈으로 7조15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기업용 라우터와 스위치 장비만을 생산하는 줄 알았던 시스코가 이제는 ‘가전(家電)’부문을 갖춘 종합 전자제품회사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번 무비빔
투자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 바로 무비빔 이용자들에게 보급할 단말기가 링크시스 제품이란 사실입니다.
3년 전 삼성전자가 무비빔 단말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이제는 시스코의 링크시스가 그
자리를 차지한 셈입니다. (삼성전자로서는 좋은 사업기회를 놓친 것일까요. 이 점, 언제 기회가 되면 삼성전자 쪽에 문의해볼
생각입니다.)
무비빔
비즈니스를 창안해 결행에 옮겼던 월트 디즈니는 2003년
9월 이후 3개 도시에서 1년 이상 무비빔
서비스를 테스트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서비스에 자신을 얻었고,
이번에 무비빔 플레이어(단말기)와 이 단말기의
핵심 칩을 공급해줄 시스코시스템스와 인텔을 합작의 파트너로 삼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페덱스와 함께
참으로 주목할 만한 파트너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텔의
CEO인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 회장이
2006년 1월 CE쇼에서 “앞으로 인텔은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가전 업체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신다면,
이번에 무비빔에 투자하면서 한 말도 새겨볼 만 합니다. 그는 “컴퓨팅과 소비자 가전
단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이제는 고품질의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로 칩 사업에만 천착하고 있었을 법한 인텔
CEO가 콘텐츠 혹은 콘텐츠와의 결합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챔버스(John Chambers) CEO는 무비빔 투자의 보도자료를 통해 “전통적인 가전 제품이 홈네트워킹 기술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창조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통제력과
보다 풍부한 소비 경험을 누릴 수 있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조업과 콘텐츠, 가전과 홈네트워킹의 결합에 의한 기존 시장의 붕괴 또는 새로운 시장의
창출과 관련,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디지털 컨버전스’ 전략의 일단면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줍니다.
무비빔은
단순한 영화 비디오의 새로운 대여사업이 아닙니다. 무선 네트워크가 불안정하더라도 온전하게 영화
콘텐츠를 각 가정에 배달하는 ‘푸시(Push) VOD)’로서,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볼 수 있어 어쩌면 영화 시청의 소비패턴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체로 홈네트워킹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으며,
‘롤 테이프’에 영화를 담아 전국 각 지의 영화관에 보급하는 수고(비용)을 대폭 절감함으로써 영화배급산업에 이정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끝>
* 우편으로 DVD를 신청해 보는
DVD대여업에서는 넷플릭스가 미국내 1위 업체입니다.
무비빔의 강력한 경쟁자가 넷플릭스라고 할 수 있는데, ‘무비빔 대 넷플릭스’ 혹은
‘온라인 비디어 대여 서비스와 우편배달을 활용한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 서비스’의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