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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fe-fine-arts[1].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ta-fe-fine-arts%5B1%5D.gif)
Santa Fe Fine Arts Museum 건물
마티스, 반 고흐, 클리, 드라크롸와
같은 유럽의 화가들이 남 프랑스와 북 아프리카의 눈부신 태양,
구비치는 산과 들판, 다채로운 의상들,
그리고 이국적인 풍습 등에서 영감을 찾았듯이
미국 대륙의 화가들 역시 미국땅의
Southwest, 특히 뉴 멕시코주가 주는 특별한 매력에
불가항력적으로 끌려 들어갔다
![santafemap[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tafemap%5B1%5D.jpg)
사막을 마주하고 높고 낮은 산들이 만들어 내는 멋진 스카이
라인, 불타는 태양,
문명에 물들지 않은 원시성, 티없이 맑은 쪽빛
하늘, 그리고 인디안들의 토착문화 등등...
사막이기에 겉보기에는 공허하나 문화적으로 풍요하고, 외양으로는
엄숙해보이나
심오할 정도로 감각적이라는 이곳은 이들에게 특별한 영감으로
작용하였다
뉴 멕시코주의 수도인 산타 페가 바로 이들 화가들의 활동의
중심지였다

Christo Rey Church 건물
미국에서 가장 이색적인 도시가 산타 페일
것이다
록키 산맥의 일부인 Sangre de
Christo 산의 해발 7000피트 되는 산기슭에 위치한 이곳에는
집들이나 상업 건물들이 거의가 아도비
건물(Adobe) 일색이기 때문이다
진흙과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붉은 벽돌인 아도비 건축 기법은 인디안들이
처음 시작한 것이지만
스페인과 멕시코인들이 그들의 건축 양식을 보완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아도비 건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집이라는 개념과는
달랐다
지붕이 평면으로 납작하고 집 전체가 아도비로 덮힌 사면체의 단순한 외양을
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여름에는 열을 발산하여 시원하게 해주고
혹심한 추위의 겨울에는 열을 보유하여 따뜻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santafe4[2].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tafe4%5B2%5D.gif)
산타 페 중심부 주변의 개인집들도 위와 같이 아도비로 지어진 집들이
많았다
원래 이곳에는 아나사지 인디안들이 AD 1150-1350까지 살았으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고
1607년 스페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의
오거스틴(Augstine)시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지만
산타 페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821년 미주리주의 올드 플랭클린 에서
산타 페까지 개척된
1000마일에 달하는 산타 페 트레일(Santa Fe
Trail) 때문이었다
이 길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서부로 뻗어난 길이며 오레곤 트레일보다
20년이나 앞선다고 한다
초기의 개척자들은 미주리주에서 칸사스 콜로라도,
오클라호마를 거쳐 산타 페로 들어왔다
그들은 도중에 홍수, 태풍, 병마, 추위와 무더위,
기아 등은 물론
코만취, 아파취 인디안들의 습격 등으로 엄청난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하루에 12- 15마일씩 전진하여서 석달이 걸리는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러나 서부로 오는 마차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포장마차에 싣고 오는 면화, 양털,
요리기구, 농기구, 유리그릇, 바느질 용품,
피아노, 굴통조림, 딸기잼 등은 그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얻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st-francis[1].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t-francis%5B1%5D.gif)
St Fransis 교회, 이곳의 첫 대주교였다는 불란서의 Jean
Baptiste Lamy 신부님이
1869년 주춧돌을 놓았다는 교회다
당시 뉴멕시코를 지배하던 멕시코인들도 산타 페에서 멕시코까지 이어지는
엘 까미노 레알(El Camino Real the Royal
Highway) 을 열었다
덕분에 산타 페는 비옥한 미시시피강과 럭키 산맥과 멕시코를 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1840년에 일어난 멕시코 전쟁 후 뉴 멕시코가 미국의 영토가
되고 이후 철도가 생기자
산타 페 트레일은 망각으로 사라지는 운명이 되었다
물론 산타 페도 덩달아 힘을 잃게 되었지만 1900년으로 들어오자
산타 페는 다시 모험을 즐기는 여행가, 화가, 작가, 폐병환자들의 천국이 된다
![san-miguel[3].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miguel%5B3%5D.gif)
San Miguel Mission 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스페인어로 Holy Faith 라는
Santa Fe의 위신을 세워준다
산타 페 다운 타운에는 남북전쟁 기념탑이 있는 작은 공원을
중심으로 유명한 La Fonda 호텔을 위시해서
200개가 넘는식당과 150개가 넘는 갤러리, 인디안
보석상, 뮤지엄들이 산재해있다
그리고 이곳의 경제가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관광객이 넘친다
이처럼 급속한 상업화에 물들어가는 이곳의 상황에 실망한 화가들이 이곳에서
70마일 떨어진
타오스(Taos)로 그들의 은신처를 옮겨
갔다는 사실이 납득이 갈 정도다
![santafe[2].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tafe%5B2%5D.gif)
아도비 건물의 유형
![santafe2[2].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santafe2%5B2%5D.gif)
아도비로 지어진 교회건물의 종탑
![lafonda[3].gif](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5/7515/1/lafonda%5B3%5D.gif)
아도비로 지어진 라 폰다 호텔 정면 모습
라폰다 호텔은 외양과 마찬가지로 로비 역시 스페인과 멕시코 풍이
가미된 가구와 벽장식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예술미가 넘친다 |